십자군 전쟁, 4차에 걸친 원정중 특히 4차에서는 원정이 실패하자 같은 기독교 도시를 공격함. 약탈과 교회재산증식을 위해서 교황이 제안하고 부추김.
성서를 잘 전달하기 위해서 여러나라 말로 번역하는 것조차 반대할 정도로 카톨릭은 패쇄적이 었음. 번역하는 사람은 말뚝에 박혀 화형당하고 교회는 기득권과 지식의 독점으로 자신의 재산을 유지하고 보호하는데 더 관심이 많았음. 프랑스 혁명전에는 국토의 1/10이 교회의 땅이었음.
한국에서도 고려말에는 불교가 그랬고 현시점에서는 기독교(특히 개신교)가 한국에서 그러함.
과학과도 반대입장, 새로운 것이나 해가된다고 판단되면 파문하고 종교재판을 벌임.
종교개혁을 루터가 시작하고 캘빈(청렴)등이 계속해서 분파되게 됨.
카톨릭내부에서도 개혁을 시작, 예수회에서 시작함 로욜라(명상)
아프리카의 노예를 제안한 것도 카톨릭에서 제안함.(바르톨로메 신부)
나중에는 타부족의 아이까지 납치해서 판매를 하게 됨.
감리교 존 웨슬리 선, 신양, 복음주의, 신앙부흥집회, 북아메리카에선 인기를 얻음. 종교적인 해석과 이론적인 면에서 방향성이 수시로 바뀌어서 혼란의 시대임.
미국의 펜실베니아(펜은 종교의 자유, 각인종, 교파간의 융화 최초로 국가내부에서 종교를 다양하게 인정함. 형재애의 도시)
종교와 사상이 변질되고 부패해서 전쟁의 원인이 되는 이유 :
많은 종파, 인간 나쁜인간 또는 오해 불씨가 튕겨지고 정치나 이익집단이 선동, 파벌형성을 해서 군대와 무력을 형성하고 전쟁을 할 준비가 됨. 선교사가 식민주의 제국주의와 결합하고 교회가 권력과 야합해서 많은 전쟁과 분쟁, 민족간의 갈등등을 만들어냄. 교회가 전쟁의 책임의 일부분을 만듬.
상업주의나 경제를 필요악이라는 생각을 일부는 가짐. 데이비드 리빙스턴과 같은 사람은 산업, 과학, 선교로 남아프리카로 감 노예무역을 비판함.
2차바티칸 공회에서는 교황의 무오류를 공지함. 그 근거로 마태복음의 “세상끝까지 가르쳐라 내가 너희와 함께 하겠다”라는 구절을 근거로 함. 과학과 사회발전에는 오히려 반대로 계속적이고 보수적인 회귀로 카톨릭은 돌아가버림. 나폴레옹이 교황을 살해함 바티칸의 세속권을 빼앗김(영토)
1907년 교황이 또다시 파문을 시킴 신교도들… 현대주의자를 파문
교리 => 많은 성직자들이 반대함
근본주의자 : 진화론 과학자와 법정싸움, 근본주의자가 패함.
교황이 나치유대인 학살에 대한 못본체함. 1950년 교황사망후 이래서는 안되겠다는 의견이 나옴 => 요한 23세(76세), 교회혁명에 불을붙임 =>2차바티칸공의회 현대세계를 받아들임. 유대교와 화해함. 유대인과 종교적관계, 카톨릭의 보수적인면을 탈피하기 시작함. 종교의 자유를 인정함. 비기독교의 신앙을 인정함.
가난한 기독교로 돌아가자, 해방신학, 탄압받는 민중, 농민을 교회가 보호하자. 엘살바도르 로메로 추기경.
요한바오로 2세, 교회의 과오를 사과함 공산주의에 반대함.
카톨릭도 잘못을 인정하고 수정한것이 최근의 일임.
한국의 개신교는 언제쯤 문제점을 인정하고 수정할지는 알수없는 일임.
한국의 개신교는 과거의 카톨릭과 불교가 그랫듯이 정치권력과 세속적인 부분에 지극히 치우쳐서 종교본래의 목적을 망각하는 시간이 계속 되고 있음. [출처] 십자군 전쟁, 기독교의 역사.|작성자 눈감고 하늘보기